1. 계속해보겠습니다 / 황정은 / 창비


  • 잊지마.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 제대로 연결해서 생각해야 해. 그런데 이렇게 연결하는 것은 의외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지도 몰라. 오히려 그런것쯤 없는 셈으로 여기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 돼. 안그러면 잊어먹게 되는거야. 잊으면 괴물이 되는거야.

  • 그 멍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멍과 살갗의 대비가 또렷했고 가느다란 약지가 그 경계를 더듬듯 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다 얼굴을 붉혔다. 예쁘다고 느꼈고 외설적이라고 느꼈다. 당시엔 외설이라는 어휘도 몰랐으므로 뭐라 표현할 말이 없어 다짜고짜 안타까웠다. 옷깃 속으로 숨어들어간 멍을 마저 보고 싶었고 그 등에 손바닥을 대보고 싶었다.

  • ... 하는 버릇 같은 것을 너는 알까. 그걸 전부 알고 있을까. 네가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는 왜 그렇게 할까. 왜 이렇게 할까. 묻고 싶었고 듣고 싶었다.










2.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채사장 / 한빛비즈 


  • 의심 없는 대중은 사회와 미디어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그들이 욕하는 대상을 같이 욕하고, 그들이 칭찬하는 대상을 같이 칭찬하며, 웃기면 웃고, 울리면 운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당신의 삶이 현재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 재벌기업의 특정 제품이 세계 점유율 1위가 되고 스포츠 스타가 세계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당신에게 절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미디어가 재벌기업과 스포츠 스타를 칭찬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반영한다고 해서, 그 열광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내 고등학생 자녀가 자기 반에 전교 1등이 있다고 나에게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정치적 집권에 대한 이론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의 괴리를 설명해주는 주요 연결고리가 미디어의 특성에 있는 것이다. 대중은 정교하고 매끄러운 미디어의 영향 아래 놓이며, 자신의 신념과 사고의 번거로움을 포기하고, 모든 평가와 판단을 미디어에게 양도한다. 

  •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대중은 주인으로서 보수와 진보를 선택할 권한을 가졌다. 모든 책임은 대중에게 있는 것이다. 









3.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 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강요해서도 안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4.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 / 홍세화 외 8명 / 교육공동체 벗  




  • 경계해야 하는 것은 능숙해지고 능란해지는 것. 아이들에게 대해 능란해진다는 것은 교사가 '자기틀'을 갖는다는 것이고 이 자기틀은 자칫 권위로 이어지기 쉽다. 교사의 틀을 벗어나는 아이들은 어떤식으로도 배제되고 소외된다.   

  • 교사가 아이들의 모든것을 책임질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수업을 준비해도 모든 아이들이 내 수업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모든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것도 어쩌면 근대적 제도로서의 공교육이 가지는 폭력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의 아픔에 대해 응답할 줄 아는 책임감을 갖는 것. 만약 아이들이 그것을 느낀다면 아이들 스스로가 자기 문제를 해결할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이 교사의 자세가 아닐까.   

  •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전혀 다른 세상의 언어를 길어 올려서 전해주는 교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교사는 일종의 복화술사 일 수 있어요. 










5. 소년이 온다 / 한강 / 창비 


  • 뜨거운 고름 같은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그녀는 눈을 부릅뜬다.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럼. 

  •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아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깜깜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6. 채식주의자 / 한강 / 창비 


  •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ㅣ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 그는 그녀의 연둣빛 몽고반점을 보았고, 거기 수액처럼 말라붙은 그의 타액과 정액의 흔적을 보았다. 갑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겪어버렸다고, 늙어벼렸다고, 지금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다.    

  •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7. 도가니 / 공지영 / 창비 


  • 모욕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강석, 이강복 두 사람과의 대면을 끝내고 나자 사람들 많은 길거리에서 혼자만 벌거벗고 걸어가는 악몽 속의 한 장면같이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워졌다. 그러자 이상하게 마주서 있는 이강복에게서 희미한 악취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짐승에게서 맡아지는 누린내 같기도 하고 깊은 바다에 오래도록 가라앉았다 건져낸 폐선에서 풍기는 녹슨 쇠비린내 같기도 했다. 그는 새 생활을 시작하는 이 아침 온몸으로 달려드는 이 야만의 예감이 두려웠다.     

  • 어둠속에서 세 개비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첫번째 성냥은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두번째 성냥은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냥은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오는 송두리째 어둠을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  

  • 나 말이야, 네가 전에 학교 다닐 때 내가 늘 옳아서 부담스러웠다는 말 생각하면서 가끔 배 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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