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마.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 제대로 연결해서 생각해야 해. 그런데 이렇게 연결하는 것은 의외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지도 몰라. 오히려 그런것쯤 없는 셈으로 여기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 돼. 안그러면 잊어먹게 되는거야. 잊으면 괴물이 되는거야.
ⅱ
그 멍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멍과 살갗의 대비가 또렷했고 가느다란 약지가 그 경계를 더듬듯 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다 얼굴을 붉혔다. 예쁘다고 느꼈고 외설적이라고 느꼈다. 당시엔 외설이라는 어휘도 몰랐으므로 뭐라 표현할 말이 없어 다짜고짜 안타까웠다. 옷깃 속으로 숨어들어간 멍을 마저 보고 싶었고 그 등에 손바닥을 대보고 싶었다.
ⅲ
... 하는 버릇 같은 것을 너는 알까. 그걸 전부 알고 있을까. 네가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는 왜 그렇게 할까. 왜 이렇게 할까. 묻고 싶었고 듣고 싶었다.
- 추천받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골라든 건 제목과 표지 때문이었다. 파란색 패턴의 표지에 깜장 달의 모습 변화 그리고 단정한 흰 글씨의 계속해보겠습니다 라는 제목. 소설은 소라와 나나 그리고 나기 특이한 이름을 가진 세 사람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인상적이었던 제목은 나나의 시점에서 자주 쓰이는 문장이다. 소라와 나기는 반말투로, 나나만 존대로 말을 잇는다. 나중에 알게된건데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연재될 당시에는 '소라나나나기' 라는 제목이었다고 한다. 책으로 출간 되면서 이 제목을 가지게 된 것 같은데 원제도 소설의 특징을 잘 드러내지만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제목이 세 명의 시점에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저 문장으로 끝나는 나나의 시점이 짧게 덧붙여지는 구조에도 잘 어울리고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고. ^^ 얘기하고 싶지 않다던가 기억이 안난다던가로 머뭇거려도 계속해보겠습니다로 담담하게 잇는 나나의 이야기들. 셋 중에 내가 가장 공감가는 화자이기도 하다. 수레를 가져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기다려주지 않는 채 앞서가는 언니 뒤를 따라가는 나나. 금붕어를 가지고 놀다가 나기에게 뺨을 맞는 나나. 적당한 감정의 사랑을 좋다고 생각하는 나나. 수많은 태몽을 태어나고 싶은 아이의 의지로 해석하는 나나. 언니야 하고 우는 나나.
소라는 애자의 말을 많이 인용한다. 있지. 하고 애자는 말했다. 최고의 대사는 단연코 쌍년.
나기는. 너. 너를 본지 오래되었다. 라고 자주 말한다. 연서 같았던 나기의 서술.
세 인물의 화법만큼 캐릭터도 다르고 자매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각자 나름의 시점으로 서술하는 것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고. 우선은 이런 느낌.
2.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채사장 / 한빛비즈
ⅰ
의심 없는 대중은 사회와 미디어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그들이 욕하는 대상을 같이 욕하고, 그들이 칭찬하는 대상을 같이 칭찬하며, 웃기면 웃고, 울리면 운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당신의 삶이 현재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 재벌기업의 특정 제품이 세계 점유율 1위가 되고 스포츠 스타가 세계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당신에게 절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미디어가 재벌기업과 스포츠 스타를 칭찬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반영한다고 해서, 그 열광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내 고등학생 자녀가 자기 반에 전교 1등이 있다고 나에게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ⅱ
정치적 집권에 대한 이론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의 괴리를 설명해주는 주요 연결고리가 미디어의 특성에 있는 것이다. 대중은 정교하고 매끄러운 미디어의 영향 아래 놓이며, 자신의 신념과 사고의 번거로움을 포기하고, 모든 평가와 판단을 미디어에게 양도한다.
ⅲ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대중은 주인으로서 보수와 진보를 선택할 권한을 가졌다. 모든 책임은 대중에게 있는 것이다.
세계 A와 세계 B. 이 책에서의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는 모두 양분된다. 복잡한 현실세계는 양분의 논리에 단순화되고 명확해진다. 양쪽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지나고 난 다음에야 그게 더 확실해진다는 점이 있지만. 둘 중에 어떤 것의 입장을 선택하냐는 지금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다. 아주 예전에. 비슷한 논조를 대학 편집실에서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교육담당 선배의 앞에서도 나는 사실 이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다음 해 내가 선배 입장이 되어 수습들을 가르칠 때도 그랬다. 나에게 주어진 내 선택들이 과연 내 삶에 얼만큼이나 영향을 미쳤을까. 나와 동떨어진 어떤 거대한 집단의 선택의 결과일 뿐 아닌가. 내가 갖고 있는 선택권이라는 건 너무 작아보여서 이걸 대중이 갖기 위해 그 시대 많은 이들이 바쳤던 희생들 조차 크게 다가오질 않았었다. 회의와 무력감, 실망과 실패의 학습.
어린 조카가 있는데. 가장 어려워 하는 것중에 하나가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게 좋아, 저게 좋아. 라고 물어보면 굉장히 난처해하며 아무거나. 라는 답을 내놓고는 한다. 아무거나가 정답이 아닌 걸 안다. 아이는 자기의 마음을 오해한다. 오래 생각해보면 1이라도 더 마음이 가는 것이 있다. 당장은 잘 모르겠고, 남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무섭고, 물어보는 이가 실망할까 두렵고, 남이 선택해주는 것이 편하니까 라는 걸 안다. 굳이 비겁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아이는 시간을 주면 10에 한 두번은 수줍게 이야기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또한 내가 내 선택에 이렇게 무뎌진것은 내 책임이 크지 않은가. 이 선택의 의미에 대해 잘 알고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으며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내가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나 스스로 명확해진다면.
미디어. 매스 미디어. 나 또한 기꺼이 소비하는 소비자이면서 종종 그 위험성을 잊지. 비판은 한계를 보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규정하는 일. 미디어가 미디어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잊지 않아야겠다.
3.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전영애 옮김 / 민음사
ⅰ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 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ⅱ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ⅲ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강요해서도 안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그 아이가 좋아했던 책이 좁은 문이었나 데미안이었나. 그 친구를 동경하고 좋아했었고 꽤 취향이 비슷했음에도 그 친구가 좋아했던 책이나 음악은 애써 더 보려하지 않았었다. 난 역시 어렸을 적에도 그런 식으로 질투를 하는 도라이였어... 거기다 민음사 문학전집. 난 저 표지 디자인이 참 별로다. 저 표지에 제각각인 폰트의 조합과 책마다 다른 색 띠. 길쭉한 직사각형의 판형도 맘에 안들고 그래서 특유의 좌우상하 여백이나 본문 폰트까지도. 내 취향에서는 멀어.
여러가지 탐탁치 않은 이유들이 있어 영 만날일이 없는 책이었는데. 연초에 그래24 사은품에 눈이 멀어 그만... 헤르만 헤세 3권을 사버렸다. 도서정가제가 실행된 후에 인터넷 서점에서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퀄 높은 굿즈는 나같이 귀얇고 눈 얉은 사람은 안보는게 상책인데. 이번에 받은 사은품도 이쁘기만 하고 어찌나 조악한지... 굿즈는 굿즈일뿐. ... ......
데미안은. 그 중학생 때 읽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보다 얇지만 한번에 쉽게 읽히지 않는 책. 그때는 좀 더 열광하며 읽었을까. 어렵다고 던져버렸을 것도 같고. 겉멋으로 그 유명한 문장_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를 여기저기 써두고 표상처럼 삼았을지도.
가장 좋았던 부분은 초반부. 유년기의 끝은 역시 다들 비슷한가봐. 전부일 것 같던 부모나 가족과의 유대를 상실하면서 어느순간 그 자리를 대체하는 강한 존재감의 누군가. 영혼이 서로에게 소속되었음을 느끼게 되는 경험. 확고한 믿음. 그리고 헤어짐. 또다른 만남들.
위에 뽑은 글귀들은 책에 등장하는 싱클레어의 유년부터 청년?기까지 영향을 미쳤던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부인과 연관된 문장들이다. 이런 인물들과 싱클레어와의 대화. 각성 같은 싱클레어의 생각들이 책의 대부분. 현학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들과 명료하게 전해지지 않는 뜻 때문에 거의 대부분을 넘겨 읽었지만 저 문장들은 맘에 들어서 남겨본다. 전체적으로 읽을 때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따로 옮겨 적고 보니 역시 명문이 많은 글이라 생각한다. 세월이 관여하지 않는 보편적 의미.
4.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 / 홍세화 외 8명 / 교육공동체 벗
ⅰ
경계해야 하는 것은 능숙해지고 능란해지는 것. 아이들에게 대해 능란해진다는 것은 교사가 '자기틀'을 갖는다는 것이고 이 자기틀은 자칫 권위로 이어지기 쉽다. 교사의 틀을 벗어나는 아이들은 어떤식으로도 배제되고 소외된다.
ⅱ
교사가 아이들의 모든것을 책임질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수업을 준비해도 모든 아이들이 내 수업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모든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것도 어쩌면 근대적 제도로서의 공교육이 가지는 폭력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의 아픔에 대해 응답할 줄 아는 책임감을 갖는 것. 만약 아이들이 그것을 느낀다면 아이들 스스로가 자기 문제를 해결할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이 교사의 자세가 아닐까.
ⅲ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전혀 다른 세상의 언어를 길어 올려서 전해주는 교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교사는 일종의 복화술사 일 수 있어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유능함을 가진 무능한 주체'
완벽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으려는 생각을 버린다. 할 말은 한다.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려는 불온함을 가진다. 집단화 되지 않는다. 동시에 나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 조직의 문제, 계급의 문제, 사회의 문제에 치환해서 보려는 노력을 한다.
공교육의 혜택을 받는 집단에서 한걸음도 비뚤어짐 없이 그대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 시절도 전혀 다른 자유교양이나 인접 학문을 접해볼 수 없는 특수 목적 대학교인 교대에서 지냈다. 종합대학에 속해있는 사대와는 또 다르다. 교대에서 교사 말고는 다른 진로는 없다. 조직에 순응하고 집단에 순종적이고 내가 배워온 그대로의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에 적당한.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교육자라는 틀에 자신을 재단할 줄 아는 모범형 인간으로 자랐다. 공부를 곧잘 해서 똑똑하고 유능하다는 주변의 평가를 듣고 살았지만 정체성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었다. 나이가 어느정도 먹은 후에는 이렇게 저렇게 만나지는 사람이나 경험, 그리고 책 등을 통해 조금씩 불온해지고 싶은 욕망이 점점 커지는 중에.학교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만난 이 책이 난 참 재미있다.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나는 승진이 하고 싶었다. 이리 저리 관리자에게 휘둘리기 싫기도 하고 관리자를 준비하는 과정이 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내 나이 또래들은 이때즈음 승진 준비를 시작하고 십수년 후에 승진 반열에 오른다. 다른 직장은 모르겠으나 여기 초등에서의 승진의 마지막 과정은. 관리자의 손발이 되는 것이다. 업무면 업무, 술이면 술. 일반 교사의 최전방, 관리자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관리자의 뜻을 받들고 명령을 하달해서(그게 어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이라도) 그 댓가로 '1등 수'의 근무평점을 5년정도 내리 받아야 승진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깊게 생각을 못한거지. 내가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스트레스로 죽을 지도 몰라;;;
신자유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욕망은 그렇게 없는 것 같은데 나한테 불안은 어느정도 존재하는 것 같다. 낙오에 대한 불안함. 주어진 길을 벗어나는 걸 상상도 못해보고 살았으니. 하지만 해보지 않았으니까. 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내 의지에 따라 학교를, 교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 개인으로서도, 교사로서도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행복하고 여유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게 누군가에게 불온한 일이라도. 겁내지 않고. 미리 걱정하지 않고. 쓸데없이 비장해지지 말고;;; ^^ 즐겁게.
5. 소년이 온다 / 한강 / 창비
ⅰ
뜨거운 고름 같은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그녀는 눈을 부릅뜬다.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ⅱ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ⅲ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럼.
ⅳ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아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깜깜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국내판 표지는 안개꽃 배경의 다소 어지러운 디자인이고 영문판의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가져왔다. 저 윗동이 다 잘려나가 어디도 갈 수 없는 것 같은 어린 발이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처럼 걸음을 떼고 있어서. 책을 읽고나면 더 마음이 아픈 표지이다.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
이 책의 여섯챕터 중 맨 앞의 두 챕터는 화자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죽었던 두 소년이고 나머지 세 챕터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화자이다. 결국 소년이 오는 걸 보는 사람은 그날에서 살아남은, 그 기억을 나눠가지고 있는, 살아남은게 스스로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인거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나오는 광장의 분수대를 참지 못해 제발 물을 잠가달라고 전화를 하고, 살아남았다는 치욕과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우고,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우고, 밤새 문 밖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듣고 뼛속까지 심장이 차가워 진채로 죽지마. 죽지말아요 라고.
단단하고 투명한 유리로 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옳지 못함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영혼이 파괴되는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그 기록들이 너무 무섭고, 처절하고, 슬프고, 억울하고, 눈물을 참느라 목구멍이 늘 아팠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내가 미처 거기 있었는지도 몰랐던 내 마음의 연한 부분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이미 알고 있다 생각했고 무려 후배들이나 아이들에게 광주 민주화 항쟁을 교육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었다. 나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영혼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얼마나 순간이었는지. 어떤식으로 처절하게 짓밟혔는지. 남은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 그들을 밝은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오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는지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기회가 생기면 이 책을 생각할 것이다.
6. 채식주의자 / 한강 / 창비
ⅰ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ㅣ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ⅱ
그는 그녀의 연둣빛 몽고반점을 보았고, 거기 수액처럼 말라붙은 그의 타액과 정액의 흔적을 보았다. 갑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겪어버렸다고, 늙어벼렸다고, 지금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다.
ⅲ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국내판 표지가 제일 아니다. 여러 해외판 표지 중에서 이걸 골랐다. 새와 나무가 이 소설에서 큰 상징물이라고 생각하니까. 한강의 문체가 주는 독특함은 인물들을 이름으로 칭하지 않은 것에도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그랬지만 작가의 문체는 분명 3인칭 시점인데 그, 그녀로 대변되는 1인칭 시점같다. 연극 지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난다. 또한 인물들의 이름은 아주 제한적으로 다뤄져서 읽기가 편한 맛도 있다. 이 소설은 영혜, 그(영혜의 형부이자 인혜의 남편. 끝까지 이름이 안나옴;), 인혜의 시점으로 된 3부작 연작 소설이다. 3부작이 서로 시기상으로 전후를 되짚어가며 이야기가 진행 되는데 뒤로 갈 수록 처음 느꼈던 난해함이 더 깊어졌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알 것 같아지는 기묘함이 있다.
이 소설에서 나한테 걸려 남은 단어는 "경계" 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경계성 지능장애의 판정을 받은 아이를 맡아본 적이 있다. 특수교육의 경계에 서있는 아이들. 어느 때는 멀쩡해 보이고 어느 때는 이상해 보이고. 어쩔 땐 아이는 늘 그대로인데 내가 보는 시선이 위태위태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경계를 본다. 어렸을 적 자신을 물던 개를 잡아먹으면서 봤던 포식자의 얼굴, 푸른 꽃잎같이 처제의 몽고반점이 박힌 엉덩이에 대한 욕망은 분명 경계에 놓여있다. 영혜는 경계를 넘어갔고, 그는 경계에서 망설이다 영혜 손을 잡고 넘어갔다. 인혜는 그 둘에 대해 원망을 품고 있지만 그녀 역시 그 둘이 경계를 뚫고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경계를 넘는 것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한다. 내가 아이를 보는 시선이 그러했듯.
나도 꿈에서 종종 내가 만들어 놓은 경계를 넘고는 한다. 그럴때면 꿈이 전부일까 두려워하며 깬다. 그런 꿈 같이 공감이 어둡고 끈덕지게 남은 소설이다.
7. 도가니 / 공지영 / 창비
ⅰ
모욕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강석, 이강복 두 사람과의 대면을 끝내고 나자 사람들 많은 길거리에서 혼자만 벌거벗고 걸어가는 악몽 속의 한 장면같이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워졌다. 그러자 이상하게 마주서 있는 이강복에게서 희미한 악취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짐승에게서 맡아지는 누린내 같기도 하고 깊은 바다에 오래도록 가라앉았다 건져낸 폐선에서 풍기는 녹슨 쇠비린내 같기도 했다. 그는 새 생활을 시작하는 이 아침 온몸으로 달려드는 이 야만의 예감이 두려웠다.
ⅱ
어둠속에서 세 개비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첫번째 성냥은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두번째 성냥은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냥은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오는 송두리째 어둠을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
ⅲ
나 말이야, 네가 전에 학교 다닐 때 내가 늘 옳아서 부담스러웠다는 말 생각하면서 가끔 배 잡고 웃었다.
야만. 야만의 냄새. 야만의 음성.
한참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사회적으로 시끄러웠던 문제작. 부모님은 이 영화를 보고 와서는 분노를 숨기지 않으셨다. 내가 보지 않은 영화라도 부모님이 볼 만한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은 들어 알고 있는 적이 많았으므로, 부모님이 영화를 보고 오시면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거들곤 했는데 이 영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직접 내가 영화로도, 책으로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겁쟁이 면모가 있다. 불편해지기 싫다는 이유로 내가 자주 고르는 선택지는 바로 못본 척 하는 것이다.
그렇게 미뤄뒀던 책을 이제야 고른 이유가 뭐였더라.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소설은 생각보다 짧았고, 생각만큼 불편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야만. 폭력.
진실의 게으름. 거짓의 무한 증식.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는 가진 자의 폭력. 야만의 연대. 성과 나이를 구분하지 않는 성폭력. 그런 것들이 여전히 내 묵은 상처를 불러내고 불안을 만들어내서 불편하고 무섭다.
그래도 마주보지도 않으려고 했던 5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은 변했다.
상처 받는 게 익숙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도덕적으로 많은 것들이 망가진 세상에서 내가 버티고, 또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그냥 못본 척 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계기를 조금씩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