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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그래] 눈썹달 03
w. volant / 볼란트





  #03.장그래 - 연필. 억울하다. 시그너스. 


  드르륵 드르륵- 조그만 연필깎이가 꽤나 큰 소리를 내며 연필을 깎는다. 머지않아 손잡이가 헛돌아가기 시작하자 조심스레 연필을 빼본다. 응. 마음에 들어. 훅- 불어내자 끝에 붙어있던 부스러기들이 날아가 더 날카롭고 매끈해진 모습이 드러난다. 깨끗한 공책 가운데를 꾹꾹 눌러 펴고 방금 깎은 연필을 대본다.

  사각사각. 연필 끝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조용한 방안이었다. 잔뜩 벼려졌던 연필 끝이 글자선을 따라 부드럽게 뭉개지며 까만 가루를 남긴다.


  장그래. 연필이나 펜을 잡게 되면 무의식중에 매번 처음 쓰곤 하는 것은 늘 자신의 이름이었다. 난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내 이름이 좋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엄마가 넌지시 내게 개명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도 전에 없이 단호하게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누군가에게 불릴 때 약간 간지럽다는 것과 쉽게 기억되는 것을 빼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장그래 뒤에 반점을 찍고 자신의 이름을 잠시 들여다본다. 내가 손에 연필을 잡기 시작한 무렵부터 가장 많이 써온 세 글자. 타고난 악필이지만 ‘장그래' 세 글자만은 그럭저럭 크게 나쁘지 않게 쓸 수 있었다. 때때로 강박처럼 가진 모든 물건에 나는 내 예쁘지 않은 글씨로 온통 꿋꿋이 ‘장그래'를 써넣는다. 나는 장그래입니다. 나는 종종 이렇게 아무도 증명하지 않는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는 했다.

 


  「 장그래,

     장백기. 

 


  잠시 망설이다가 입학선서를 하던 그 날처럼, 내 이름과 장백기의 이름을 붙여 써본다. 소리 내서 불러본 적도 없고 글씨로 써본 것조차 처음인 장백기다. 뻗어 나가던 생각이 잠시 멈춘 후, ‘처음'이란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서 느낌표를 찍는다. 처음 이름을 들은 순간, 처음 얼굴을 본 순간, 처음 목소리를 들은 순간. 장백기와의 모든 처음은 이렇게 느낌표를 찍고 머릿속에 특별한 부분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니, 이건 머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차라리 마음이 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하긴 장백기와 엮인 모든 일들은 내게 처음이 아닌 것이 드물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나 나를 쥐고 흔들고 또 놓아주지 않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곰곰히 생각에 잠겨 손에 쥐고 있는 연필을 손가락 사이로 가볍게 몇 번 돌려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대로 다시 연필을 공책에 대고 끼적인다.

 


 

  「 장그래,

      장백기. 

 

     억울하다. 

 

 

 

  이건 뭐지? 스스로 써놓고도 난데없이 공책위에 튀어나온 글자들이 믿겨지지 않아 방금 쓴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본다. 약간 번졌을 뿐 하얀 공책에 까만 글씨는 또렷하다. 억울하다라... 억울하구나. 나는. 장그래는 장백기에게 억울한 거다. 지금.

  이건...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두근두근 심장소리를 들으며 차마 눈도 감을 수가 없어 내 손으로 내 두 눈을 가렸던 그 밤. 그 밤 이후로 뭔가 명확해질 것 같았던 관계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날만 해도 동쪽 밤하늘에 걸려있던 백조자리가 밤하늘 가운데로 이동 해 올 때까지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서 기대에 찬 내 시선을 보란 듯이 장백기는 비껴 지나갔고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이후로 학교에서 장백기의 동선은 눈에 띄게 단출해졌다.

 

  “요새 장백기, 각종 백일장, 산출물대회, 올림피아드까지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던데? 선생들 지독하지 않냐? 겉으로는 학생 점수 딴다지만 다들 자기 실적 때문에 하는 짓이잖아. 2,3학년 데리고 나갔다가는 수험생들이라 민원 들어오니까 아주 만만한 게 1학년 애송이들이지. 적당히 알아서 대충 하면 선생들도 덜 괴롭힐 텐데 또 기를 쓰고 한다니까. 그 새끼도 참 외골수야.”

 

  정수를 통해 듣는 장백기는 꼭 그럴 것만 같아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자주 못 봐서 시무룩해진 가운데 한 가지 위로가 되었던 건 일주일에 두세 번, 아홉시 즈음 - 30분 남짓한 시간. 공터에서 장백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꼭 장백기가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 좋았다. 내게는 어느덧 나무 옆 벤치보다 구조물 뒤 아무렇게나 버려진 벽돌이 제자리처럼 더 편안했다.


  공터에서 만나는 장백기는 생각보다 시끄럽기도 했고, 어느 날은 생각보다 조용하기도 했다. 별이나 책, 그림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땐 꼭 노래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학교일이나 힘든 일을 토로할 때면 더할 수 없이 낮아졌다.

 

  학교에서의 장백기는 절대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학교에서의 장백기는 늘 한결같이 하나의 목소리와 하나의 모습을 유지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누구나 바라는 모습의 장백기였다. 그리고 나는 계속 그렇게 지켜보는 밤을 쌓아갈수록 원래의 장백기는 이 쪽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왜 그렇게 다른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다시 생각해보면, 장백기와 나와의 거리는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멀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언젠가부터 내 밤하늘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지만 그 주위의 어둠처럼 나는 그에 대해 알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러다 오늘 결국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점심시간, 나는 운동장 수돗가 주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수돗가 위에 놓여있는 낯익은 시계를 발견했다. 나는 시계 같은 건 차고 다니지 않았으므로 그 물건이 내게 눈이 익다는 건 곧 장백기 거라는 뜻이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시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봤을 때 그 시간 그 길 위에 존재했던 많은 얼굴과 뒷모습 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의 모습만이 채색된 것처럼 반짝이는 것을 바라본다. 이렇게 밝은 빛 아래서 가까이 마주친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으므로. 나는 그것에 고취되어 나도 모르게 그 등을 따라잡고 그리고는 불러 세웠다. 그래, 나도 모르게.

 

  뭐라고 불렀더라. 저기- 아님 장백기? 어쨌든 장백기는 내 부름에 뒤돌아봤다. 세수를 한 건지 안경을 쓰지 않은 말간 얼굴과 젖은 앞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말없이 시계를 내밀었고 장백기는 아... 하더니 고맙다는 말을 짧게 덧붙이고는 낚아채듯 내 손에서 시계를 가져갔다.

  빌어먹을. 내가 한 말은 기억조차 안 나면서 그 순간 장백기의 움직임은 작은 것 하나하나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재생시킨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짧았던 순간의 그의 말과 그 몸짓에서 받은 느낌을 언어로 치환하자면... 그건 바로 ‘불쾌'였다. 나를 그 아이라고 부르면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건 이미 내가 나서지 않는 이상 포기한 문제였지만 이것은 좀 아팠다. 오늘 나의 행동은 특별한 게 아니라 누가 봐도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 베풀 수 있는 친절에 지나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왠지 내가 느낀 장백기의 ‘불쾌'는 꼭 내 마음에 대한 대답인 것만 같아, 나는 지금. 억울하고 또 어쩔 수 없이 슬프다.

 

  9시 10분. 오늘은 장백기가 공터에 오는 날이다. 나는 지금 억울해서 떼를 쓰듯 공터에 가지 않는 것이다. 인정해놓자 이젠 버릇 같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연필을 내던지다 시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억울해도, 지금 거기 떠 있는 별은 오직 나만 볼 수 있으니 보러가지 않을 수가 없잖아.

 

  발걸음을 죽이고 다가간 공터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벤치 끝으로 나온 장백기의 운동화가 보였지만 아무리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여도 들리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플라타너스 잎이 부딪히는 소리 뿐 책장 넘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지... 나는 더 발걸음 소리를 없애고 조심스레 벤치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슬쩍 넘어다 본 벤치 위에는 장백기가 자기 팔을 베고 모로 누워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잠들 거면 편하게나 눕지 왜 저렇게 불편하게 누워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울컥 솟아났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평소보다 붉은 것도 같고. 몸이 좀 안 좋은가? 가을 초입의 밤이라 저렇게 잠들면 좀 추울 텐데.

  어찌할 바를 몰라 한참을 벤치 뒤에서 서성이다가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내 지정석으로 돌아왔다. 앉아서 올려다 본 하늘에 은하수 속을 날아다니듯 십자꼴의 백조자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억울함으로 헝클어져 있던 마음이 저기 불편하게 누워 잠든 장백기에 대한 연민으로 가만히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왠지 마음이 한없이 몽글몽글해져 나도 자꾸만 눈이 감겨왔다.

 

 

 

 

  “파에톤.”

  얼마를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졸았을까. 도저히 피하려 해도 피해지지 않고 끈적하게 따라붙던 수마의 끈을 익숙한 목소리가 단숨에 낚아채간다.

 

  “아폴론과 요정사이의 아들이지. 파에톤은 아버지가 아폴론이라고 자랑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자신이 아폴론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태양의 마차를 끌려고 했어. 오직 파에톤의 친구인 시그너스만이 그런 그를 말렸지. 결국 아폴론을 찾아간 파에톤은 아폴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마차를 끌게 되었어. 결국 익숙하지 않은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고삐를 놓친 파에톤은 온 세상을 불태워 아수라장을 만들었고 제우스는 번개를 던져 그를 죽음의 강인 에리다누스 강에 떨어트리고 말아. 이를 지켜 보던 시그너스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_ 그의 시체라도 찾으려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지.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슬픔과 탈진으로 인해 죽고 말았고.”

 

  “그 뒤 제우스가 죽은 시그너스의 모습을 백조로 바꾸어 밤하늘에 올렸어. 백조가 계속 먹이를 찾으려 물속으로 고개를 박는 것이 꼭 파에톤을 찾으려 물속을 헤매는 시그너스 같았기 때문이지. 이게 백조자리의 신화야. 가을밤엔 백조자리는 하늘의 정 가운데에 오기 때문에 보려면 제대로 보려면 차라리 이렇게 누워서 보는 게 편해.

  있잖아 나는, 나란 사람은 꼭 파에톤 같아. 내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무리해서 빛나는 태양의 마차를 끌고 있는. 위태로이 흔들려서 방금이라도 놓칠 것 같은 고삐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잡고 있는 그 모습이 꼭 나 같아서. 땅 밑의 사람들은 태양의 마차를 끄는 파에톤을 보고 경외심을 갖기보다는 어서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을 거야. 그러니... 콜록콜록...”

 

  장백기는 말을 멈추고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발작처럼 터져 나온 기침은 벤치에서 일어나 앉아도 멈추지 않고 급기야 가벼운 헛구역질 까지 이어졌다. 나는 안절부절못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반쯤 일어서고 있었다. 장백기는 격한 기침 끝에 겨우 나무를 붙잡고 서서 거친 숨을 몰아셨다.

 

  “하아...하아... 하긴 파에톤보다는 내가 몇 배는 더 불쌍해. 나에겐 시그너스도 없으니까...

  고마워. 계속 잠도 못 잤는데 여기 와서야 겨우 조금 잤어.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정신을 빼놨는지. 하마터면 시계도 잃어버릴 뻔 했지. 자꾸 풀어지는 내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났어. 오늘은. 하루 종일.”

 


  장백기는 떨리는 손을 들어 한참을 나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다가 짧게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또 미안. 난 오랫동안 여기, 너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그 날 이후로 네 앞에 서 있던 그 아이 생각을 더 많이 해. 이런 생각 웃긴 거 아는데, 여기서 별자리를 보는 시간에 꼭 그 아이도 함께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 그 아이가 내 별자리 책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런가...

  오늘 백조자리를 보면서도. 나는 또 그 아이 생각을 했어. 내 옆에서 같이 별자리를 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너를 쓰다듬던 그 다정한 손길처럼 내 이마를 쓸어주고. 그래서 파에톤을 말렸던 시그너스처럼, 그 아이가 나를 좀 잡아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들을 했어.

  아, 이건 좀 미친놈 같으니까 전해 줄 필요는 없어. 그냥 너만 알고 있어.”

 

  곧 나무에게 안녕을 고한 장백기가 가방을 메고 여느 때와 같이 내가 있는 자리를 지나쳐가 계단을 내려간다. 나는 홀린 듯이 일어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장백기 뒤를 밟았다. 이렇게 공터 바깥까지 쫒아가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보던 대로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단정한 걸음 걸이였지만 미세하게 내려간 어깨 라던지 조금씩 땅에 끌리는 신발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낸다.

  그리고는 오늘 내가 건넨 시계가 채워진 단단한 팔목과 걸음에 가볍게 흔들리는 손끝까지 시선이 가 닿는다. 오늘 내 손에서 시계를 낚아채갈 때 살짝 닿았던 그 손의 온도나 감촉은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이대로 더 빨리 걸어가 흔들리는 장백기의 저 손에 내 손을 겹쳐 잡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황급히 장백기의 손에서 눈을 떼었다.

 

  장백기의 집은 우리 집과 정 반대 방향에 위치하고 있었다. 앞에 공중전화 박스가 있고 담이 높은 어떤 이층 집 앞에 멈춰선 장백기는 곧 집 안으로 사라졌다.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장백기가 들어간 지 잠시 후에 이층의 한 방에 불이 켜지는 것 까지 조용히 지켜봤다. 장백기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빛이 이제 가도 돼, 라고 말하는 것 같아 뒤를 돌아 나왔다.



 

  집으로 가던 발걸음이 다시 공터로 향했다. 오늘밤이 더 깊어가기 전에, 아까 장백기가 누워있던 벤치에 누워 백조자리를 한 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장백기의 말이 한 문장씩 떠올랐다. 백조자리. 파에톤. 태양의 마차. 시그너스. 내 발이 밟는 것은 분명 계단이었는데 장백기의 말에 짓이겨지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아까 본 장백기의 허탈한 손이 생각났다. 태양의 마차에 고삐를 잡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능숙치 않게 서투른 새 주인의 손길을 눈치 챈 하늘의 말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을 것이다. 지금껏 얼마나 고삐를 꽉 잡고 버텼을까. 아래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얼마나 차갑고 또 무서웠을까. 내가 시그너스라면, 절대 그 마차에 파에톤 혼자 태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공터로 향하는 계단을 끝까지 올라왔을 때는 심장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걸어가 금방 전까지 장백기가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 옆 벤치에 털썩 앉아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잠긴 벤치 앞에의 부드러운 흙 위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게 뭐야, 장백기...”

 

  나는 손을 들어 다시금 내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방금 눈에 띈 무언가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무질서하게 보이는 벤치 앞에 흩어진 돌멩이들 가운데 나는 분명 9개의 돌멩이들이 익숙한 배열로 놓여있는 것을 봤다. 9개 돌멩이가 나타내는 익숙한 배열은 저 밤하늘의 백조자리의 형태가 분명했다. 자신이 잠든 사이 돌들을 주어 벤치 앞에 웅크리고 앉아 하늘의 별자리대로 배열하는 장백기가 그려졌다. 뭔가 울컥하고 따뜻한 감정이 계속해서 내 슬픈 마음을 채우고 또 흘러나와 눈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왔다. 이게 뭐야, 장백기...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너는. 정말. 

  한참 뒤에 얼굴에서 손을 떼고 밤하늘의 빛나는 백조자리 대신 땅 위의 장백기가 만들어준 사랑스러운 백조자리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나는 백조의 꼬리 부분_ 1등급의 알파별 데네브 자리에 놓인 가장 큰 돌멩이 옆에 막대기로 작게 쓰여 진 장백기의 글씨를 발견했다.

 

 


 

For my Cygnus.




 

(나의 시그너스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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