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XsJQuHn2724







  [백기그래] 눈썹달 06 
  w. volant / 볼란트 











   #06. 장그래 - 수필집. 낭독하다. 내 이름을 아는 장백기. 




  - 계속 말해줘요. 
  - 뭐를? 
  - 그냥 아무 말이나. 목소리 계속 듣고 싶어. 
  - ... 나는 내 목소리가 어떤지 모르겠어. 
  - 전화번호 종이에 쓸 때부터 계속 이 순간을 상상하긴 했는데, 넌 항상 내 상상을 뛰어넘으니까. 뭐라 설명하기 힘든데. 확실한 건... 좋아. 정말 좋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장백기의 목소리가 어쩐지 귓가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아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덜그럭. 또 동전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가지고 있는 동전이 얼마 없었다. 수화기를 든 손이 차가워졌다. 이제 곧 전화는 끊길 것이다. 

  - 미안, 나 전화 끊길 것 같아. 
  - 잠깐만. 저기. 다음에, 또 전화 할 거지? 
  - 응. 그럴게요. 오늘 진짜 고마웠어. 안녕. 
  그렇게 전화를 끊고 공중전화 박스를 나와 장백기의 방이 있는 이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순간 창문에 쳐진 커튼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아 긴장했다. 도망가진 않을 거야. 나는 그대로 잠시 서서 커튼의 움직임을 노려보듯 보고 서있었다. 마치 그건 너의 착각일 뿐이었다는 듯 장백기의 커튼은 더 이상의 움직임이 없었다. 


  계속 말해줘요. 
  좋아. 정말 좋아. 
  또 전화 할 거지? 


  곳곳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계속해서 귀에 장백기의 말이 들려왔다. 정확히 상대를 나로 고정시킨 그의 목소리는 공터에서 들었던 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밀도를 가지고 귀에 감겨들었다. 그 느낌이 아직 귀에 남아 있는 것 같아 조심스레 귀를 만져보았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설레고 사랑스러운 걸까. 네가 보이지도 않을 것을 알면서 괜히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별처럼 빛나는 너의 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대로 뒷걸음질을 했다. 그리고 이 눈에 보이는 이 시야, 이 순간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쉽게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순간의 장면이었다. 








  “어, 누가 시계 놓고 갔다.” 

  정수의 말에 수돗가 단 위를 보니 손목시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수와 나는 새로 우리에게 배정된 청소구역인 운동장 스탠드와 바로 옆 수돗가를 한창 청소 중이었다. 요즘은 낙엽이 많을 때라 쓸어도 또 쓸어도 끝이 없다며 정수의 짜증이 대단했다. 

  “헤, 어떤 정신 나간 새끼야 이거. 좋아 보이는데.” 
  정수 손에 장난스럽게 둘러진 손목시계가 어딘가 거슬려 보이는 건 왜지... 아... 이런. 

  “야. 그거 풀어봐. 나 이거 누구 건지 알아.” 
  “진짜? 확실해? 헐... 너 이런 거 잘못 가져가면 덤터기 써. 그냥 교무실에 갖다 주자.” 
  “...이리 줘. 확실히 아는 거 맞으니까, 내가 전해줄게.” 
  “하... 여전히 까칠한 장그래씨... 그래, 그러던지. 뭐.” 

  정수 손에서 빼앗듯 넘겨받은 시계를 소중히 받아 손에 쥐었다. 손에서 반짝이는 낯익은 시계. 
  그러니까 나는. 이걸. 핑계로 삼을 것이다. 찾고 있을 장백기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게 벌써 두 번째 잖아. 너도 반성할 시간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안쓰러운 마음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탁. 
  일부러 소리가 나게 연필을 내려놨다. 들여다 본 핸드폰의 숫자는 벌써 1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 후로도 며칠을 11자리의 숫자는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내 방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이렇게 공부를 위한 필기를 하다가도 보면 무심코 적게 되는 것은 익숙한 숫자들의 배열이었다. 안 돼. 이래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분명. 그 마음의 농도가 어떨지는 모르겠다. 미루어보아 그저 내 마음보다는 가벼울 것이라 짐작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상상하기도 어렵고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만큼 너도 하루의 대부분. 생각이 비는 순간순간을 이렇게 상대로 채우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나의. 

  언제쯤 편지를 쓸까. 
  언제쯤 전화를 할까. 
  언제쯤 얼굴을 볼까. 

  너의. 

  언제쯤 편지가 올까. 
  언제쯤 전화가 올까. 
  언제쯤 얼굴을 보여줄까. 


  새삼 이 관계의 모든 턴이 나에게 돌려져 있음을 실감한다. 내가 가볍게 또는 오래 생각해서 넘긴 턴을 장백기는 바로바로 하지만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게 나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턴을 주고 받을수록 커지는 판을 본다. 이제 눈에 잡힐 듯이 바로 내 앞에 서 있는듯한 너. 

  계속 말해줘요. 장백기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마음이 뭉근해지면서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요즘 자주 느끼는 감정 중 하나였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관계에서의 턴 주기는 이렇게 서로에게 가까워질수록 가속이 붙었고 결국에 우리는 서로에게 턴을 넘기던 손을 맞잡게 될 것이다. 

  들고 오는 내내 무거웠고, 집에서도 계속 시선을 뺏어내던 가방을 열어 깊이 숨겨놨던 장백기의 시계를 꺼냈다. 달칵. 손목에 걸어 걸쇠를 매본다. 가장 안쪽의 구멍에 맞추니 내 손목에도 딱 맞았다.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주인이 가장 많이 걸어버릇 해 흔적이 남아있는 구멍에 맞추어 다시 걸어본다. 맥없이 이리저리 헐렁거리는 시계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네 손목은 이정도구나. 잠시 망설이다가 시계가 매어진 손목을 코에 가까이 하고 맡아보았다. 가죽시계라 그런지 확연히 주변과 다른 향이 배어있었다. 알 수 있었다. 항상 그 주변을 맴돌던, 주인의 손에서 전해지는 날이면 으레 까만 책에서 나고는 했던, 그 향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죄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 뿐이구나. 어쨌든 돌려줘야 했다. 잠시 그렇게 장백기의 시계를 가지고 놀다가 저만치 밀어둔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뭐 하고 있어?」 
  거침없이 써내려간 것과는 달리 전송버튼 위에서는 한참을 망설인다. 그래도. 손가락을 움직여 버튼을 눌렀다. 턴 받아. 장백기. 네 차례야. 

  밝게 빛나던 핸드폰의 불빛이 점멸하고 잠잠하다. 1분, 2분...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까맣게 잠식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바쁜가. 못 봤을 거야. 봤다면. 봤는데 내가 보낸 건지 모를 수도 있잖아. 나인 줄 알았다면. 그럼 어쩌지. 내가 이제 싫어진 걸까.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이젠 흥미가 없어져서? 이런 마음까지 들 거였다면 보내지 않을 걸 그랬다. 뭔가 분함이 올라와서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게 뭐라고 아무 잘못도 없는 너를 원망까지 하게 만드는 걸까. 

  폰을 손에 쥔 채로 노려보다가 이불위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정말 마음이 아파져서 다시 폰을 가져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11자리의 숫자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 여보세요. 
  - ... 지금 전화 받을 수 있어요? 
  - 네. 

  - 그런데 왜 답장은 안 하는데. 
  - 목소리 듣고 싶어서. 결국 이렇게 성공했잖아. 
  - ... ... 
  - 화났어요? 아니 나는.. 계속 답장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고.. 그러느라... 미안. 

  - 화 안 났어요. 그런데 왜 썼다가 지워. 
  - 솔직하게? 
  - 응. 솔직하게. 

  - 네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랬다고 하면 너무 부담스러워 할 것도 같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자니 안 내키고. 
     이 두 개를 계속 썼다 지우고 그랬어. 나 바보 같지. 

  - 아니. 나도... 
  - 응? 
  - 나도 너랑 비슷해. 다르지 않다구. 
  - 응.. 그래도 이렇게 전화 주니까 좋아요. 

  - 참, 오늘 시계 잃어버렸지? 
  - 맞아. 어떻게 알아? 
  - 내가 주었거든. 수돗가에서. 
  - 정말? 어떻게 내 거인지 알았어? 
  - 전에도 한 번 주워준 적 있거든. 
  - 진짜?? 그럼 우리 서로 얼굴도 본 거야, 이미? 
  - 응, 아마 기억 안 날거야. 너 안경도 안 쓰고 있었어, 그 때. 
  - 아. 기억날 것 같아요. 그 아이가. 너였구나. 맞아. 내 이름을 정확히 불렀었어. 그래서 나중에 이상해 했던 기억이 나요. 
  - 응 아마 그거 나 맞을걸. 이번에도 직접 돌려주고 싶어서 가져왔는데. 

  - 가지고 있어요. 
  - 응? 매일 차고 다니는 거 아냐? 
  - 맞아. 그런데 보다시피 내가 그렇게 함부로 하니까. 화 나있을거야. 네가 갖고 있어줘요. 당분간. 
     대신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돼요? 

  - 부탁? 뭐? 
  - 나 너 목소리 더 길게 들어보고 싶은데. 혹시 지금 앞에 책 같은 거 있으면. 한 단락 정도만 읽어줄 수 있을까 해서. 
  - 아, 잠깐만. 

  분명 장백기의 목소리에 주저함이 깔려있다. 실내라 그런가 첫 통화보다 더 가깝게 들리는 장백기의 말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앞에 빼곡히 들어찬 책장에서 빠르게 공책 한 권을 빼들었다. 평소에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적어 두고는 했던 독서 공책이었다. 서둘러 눈으로 훑어 적당한 부분을 골랐다. 




  『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유대감, 편지를 쓰면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었을 시간의 소중함, 그런 사사로운 감각 같은 것이 진정 우리 생활엔 있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 온갖 테마로 엮어진 갖가지 편지 중에도 가장 절실한 건 아마도 써놓고 보내지 못하는 편지일 것이다. 
    쓰고도 보내지 못하는 편지, 영원히 보낼 수 없는 편지, 그런 편지를 밤이 깊도록 쓰고 앉은 외로운 가슴의 사연일 것이다. 』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렸다. 다 읽었는데 장백기의 아무런 답이 없어서 나도 잠시 그대로 핸드폰을 들고 침묵했다. 여전히 손목에 헐렁하게 걸려있던 그의 손목시계를 풀어 손에 쥐었다. 그러다 더 이상 부끄러움을 참기 힘들어서 나는 작게 소리 내 말했다. 

  - 여보세요. 장백기... 왜 아무 말도 안 해.. 
  - 나도 부르고 싶어. 
  - 뭐를? 
  - 네 이름. 


  - ... 그래. 
  - 응? 
  - 내 이름. 그래. 장그래. 
  - 아... 미안. 
  - ... 부르고 싶다며. 불러 봐요. 


  - 그래- 장그래-. 그래야. 
  - 응. 
  - 말도 안 돼... 
  - 왜? 
  - 있잖아요. 나 지금.. 말도 안 되게 행복한데. 이거. 나 이상하지. 이상할거야. 말도 안 되니까. 


  어딘가 모르게 평소답지 않게 장황한 장백기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야, 밤에 누구하고 통화하니. 일찍 자야 내일 일어나서 학교 가지.” 
  어김없이 들려온 건넛방 엄마의 말에 나는 핸드폰을 막고 네- 라고 짧게 대답했다. 


  - 나 이만 끊어야 해. 
  - 응, 미안. 장그래, 잠깐만. 

  내가 그대로 끊어 버릴까봐 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말하는 장백기의 목소리 때문에 나는 일어나 불을 끄고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작게 속삭였다. 

  - 말해요. 
  - 고맙다구. 아까, 이름 말해줘서. 그래도 괜찮겠어? 
  - 응. 나도 네 이름 알고 있는데 뭘. 

  - 이름으로, 내가 학교에서 널 찾아도? 
  - 그러려고 알려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 
  - 아니야. 그냥. 나는. 네가 알려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아까 네가 책 읽어주는데 그대로 그렇게 보내지 못한 편지처럼 놓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조바심이 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러니까. 이름도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알아버렸으니까. 얼굴은 그렇게 보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오늘 알려준 이름으로 일부러 찾진 않을게요. 
  - 응. 그래. 
  - 그래도. 왠지 곧 만나질 것 같아. 우리. 

  확신에 찬 장백기의 말에 핸드폰에 닿아있는 귀가 더욱 더 뜨거워졌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방금 전 통화목록을 살펴봤다. 아직 나는 그를 뭐라 저장해야 할 지 몰라 목록에는 그대로 11자리의 숫자가 멀뚱히 떠 있었다. 슥슥 편집 페이지로 넘겼다. 이름을 쓰는 칸을 꾹 누르고 글자를 입력한다. 

  ‘내 이름을 아는 장백기' 

  저장을 끝내자 통화 목록에 이제 11자리의 숫자 대신 ‘내 이름을 아는 장백기'라는 글씨가 반짝 떠올랐다. 그대로 나는 핸드폰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숨 막힐 듯 조용해진 방안은 장백기의 손목 시계에서 들려오는 초침 소리가 조금씩 공간을 채워갔다. 








  “장그래, 알아? 우리 학교 교지 나왔어.” 
  “교지?” 
  “그래 교지. 아까 하교 시간에 담임이 세대별로 가져가라 길래 내가 너 것 까지 챙겼지. 너 우리 학교 다니는 형제 없지? 거기 내 가방 속에 있어.” 
  “그런 거 챙길 생각 하지 말고, 청소나 제대로 해. 너가 오늘 스탠드였잖아. 담임한테 걸려서 나까지 집에도 못가고 이게 뭐냐, 이정수.” 
  “야, 나 했다니까. 아니 바람만 불면 온통 낙엽 천지인데 이걸 어쩌라고. 이게 왜 내 탓이야, 도대체.” 

  나는 스탠드 난간에 걸터앉아 정수의 가방을 앞으로 메고는 아이들이 빠져 나가는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내 등 뒤 스탠드 위에서는 정수가 열심히 낙엽들을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었다. 교지라... 벌써 교지가 나올 때인가. 정수의 가방을 열고 빳빳한 표지의 두 권의 책 중에 한 권을 꺼낸다. 소성. 어, 생각보다 예쁜 이름이네. 아무래도 학교 이름에서 따왔겠지만. 남고 교지 이름으로는 좀 더 딱딱한 이름을 생각했었는데. 제목이 마음에 들어 흐뭇하게 스르륵 페이지를 넘기자 막 상자에서 꺼낸 인쇄물의 냄새가 올라왔다. 

  “거기 장백기 글도 실렸더라. 명색이 교지편집부 수습이잖아. 그래도 아는 새끼라고 그 녀석 글부터 읽히더라. 나도 아까 읽다 말았어. 뭐 책 소개 글 같았는데.” 


  그러네. 정수의 말대로 장백기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본교 교지편집부 수습기자 장백기. 그 말이 못내 풋풋하게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그가 쓴 기사는 큰 메인의 기사는 아니었고 수습의 위치에 맞는 책 말미의 까만 책- 별자리 책에 대한 소개 글이었다. 

  “뭘 그렇게 실실 거리고 있어, 장그래. 그러고 있지 말고, 너 심심하면 장백기가 추천하는 책이 뭔지 좀 읽어봐. 나 아까 읽다가 담탱이 당장 청소 다시 하라고 지랄거리는 바람에 못 읽었잖아.” 

  “넌 네가 잘 못 해놓고 뭐 그렇게 바라는 게 많아. 나한테. 몰라, 나 갈 거야.” 

  “어.. 장그래... 매정해... 그래. 알았어. 내가 담임한테는... 장그래랑 같은 청소구역 담당인데... 그 자식 나 버리고 잘 먹고 잘살겠다고 혼자 갔다고... 그렇게 말해줄게... 가버려 새끼야..... ” 

  나는 분명 등 뒤에서 청승맞은 척 연기하고 있을 정수의 능글맞은 얼굴을 짐작하며 조용히 교지를 다시 펴들었다. 솔직히 장백기의 글이 아니면 읽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 맘대로 백기의 기사글 중 마지막 단락을 정해 읽기 시작했다. 정수의 빗자루질 소리에 지지 않으려 평소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 사실 나의 아버지는 이 책에 나오는 별에 대해 말해주는 아버지와 같이 박식하면서 따뜻한 타입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어린 아들에게 매일 버겁고 어려운 책들만 잔뜩 사서 안기던 내 아버지는 어느 날인가 이 책을 사들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책도 하나 즈음 읽는 것도 괜찮겠지.” 

  그의 말대로 이런 책은 한 권으로 괜찮았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53개의 별자리 정보는 물론 여러 가지 천문 지식, 관측의 실제, 동서양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까지 모든 것에 재미없어 하던 소년을 별을 보는 소년으로 만들기에 딱 괜찮은 한 권이었다. 당신이 볼 수 있는 멋진 밤하늘은 이제 점점 책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번쩍이는 도시의 불빛에 쫓겨 완전히 책 속으로 숨어버리기 전에 이 책과 함께 별자리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 





  “와. 그런데 이 기사 진짜 잘 쓰지 않았어? 이정수, 이 책 말야, 내가... ” 

  기사를 다 읽고 웃으며 뒤를 돌아본 내 시야에 대빗자루를 쥐고 서있는 정수 외에 낯선 두 사람의 모습도 함께 들어왔다. 그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한석율과 더없이 얼굴이 빨개진 장백기였다. 
  한석율은 손가락으로 옆의 장백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오오 장백기, 너 기분 좋겠다.” 

  툭. 내 손에서 떨어진 교지가 저 아래 운동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나간 듯 내 몸도 따라서 난간에서 미끄러지는 찰나 생각지도 못한 손이 뒤에서 뻗어져 나와 내 가방을 잡아챘다. 그리고 곧 익숙한 체향과 익숙한 목소리가 내려앉듯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잡았다, 장그래.” 















 





'눈썹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기그래] 눈썹달 - 07  (5) 2015.07.03
[백기그래] 눈썹달 - 05  (7) 2015.06.16
[백기그래] 눈썹달 - 04_2  (4) 2015.06.11
[백기그래] 눈썹달 - 04  (2) 2015.06.07
[백기그래] 눈썹달 - 03  (0) 2015.05.31